이해가 안 되는 일을 겪었다. 그러고 나서 오래오래 아파했다. 당연하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작정 믿었던 일이었으니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이해할 수 없는 나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미치도록 괴로웠다.
내가 겪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무작정 긴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널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 우주에서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뭐가 진짠지 뭐가 옳은지 뭐가 맞는지.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중요한 건 나의 생각.
나는 뭘 믿는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받아들일 건지
어떻게 해석할 건지
나의 인생은 온통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
남의 판단이 아닌 내가 내릴 모든 선택들
그것만이 중요하다.
그게 내 미래를 결정할 테니까.
그래서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그것에 대한 나의 해석, 내가 부여하는 의미.
그게 더 중요하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나쁘게 해석하는 사람과
좋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그 해석에 따라 현재 얻는 교훈도 느낌도 태도도
다 달라지고 그것이 이어져 미래의 행동과 결과도 달라지게 만든다.
10년 전이든 1초 후이든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다만 나의 관점과 해석이 입혀진 스토리만이 매 순간 내 인생에 남을 뿐이다.
누구는 신을 믿고 누구는 신을 안 믿는다.
누구는 까르마를 믿고 누구는 안 믿는다.
누구는 운명론을 믿고 누구는 안 믿는다.
누구는 죽으면 천국을 간다고 믿고
누구는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이걸 다 어떻게 증명할 거야.
세상엔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같은 역사적 사건도 나라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쓰여진다. 그래서 때로 중요한 것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사실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점.
내가 그것을 해석하는 시선이다.
사실을 왜곡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CCTV에 찍히듯 과거는 하나의 사실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느끼는 나의 감정은?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다.
특히 나쁜 일에 대해서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혹은 왜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까? 나는 이런 일을 당할 운명이었을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부정적으로.
그것이 부정적인 시선이라는 것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 한다.
그것을 오롯이 겪어 가장 잘 아는 건
나밖에 없으면서도.
점술, 사주, 마음공부, 자기 계발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뾰족한 해설과 문제풀이를 바란다. 마치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나는 뭐가 맞았는지 누가 틀렸는지 왜 이렇게 된 건지 빨리 판가름을 하라고 재촉하며 내가 모르겠으면 알 만한 누구에게 질문을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어리석은 편지를 쓰다가 발견했다.
누가 어떻게 말한들 내가 만족스러울까?
잘 살았습니다, 못 살았습니다.
이렇게 했었어야 됩니다, 저렇게 했었어야 합니다.
당신은 피해자였습니다. 불쌍하군요
당신은 가해자였습니다. 반성하세요.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은 나로 살아보지 않았다. 내가 겪은 과거에 대해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하나의 같은 경험을 해도 모든 사람이 다르게 느낀다. 사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생에 있어 정답이란 없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만큼은
그 어떤 것도 의지하면 안 된다. 혼자 모든 걸 다 하라는 게 아니라 책임을 떠넘길 만큼 나 아닌 어떤 것을 의지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진정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 내 인생을 사는 건 나밖에 없다.
이제는 그만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정답은 내 안에 있으니까. 나만의 정답은 내 안에서 찾는 것이니까. 소화되지 않아 불편했던 과거도 내가 달랠 것이고 밖에서 찾으려 했던 구원자도 내가 될 것이다. 심판자나 구원자를 밖에서 찾는 어리석은 편지는 그만 쓰고 나는 나만이 쓸 수 있는 다정한 세상을 써 나갈 것이다.
나는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
이 말은 즉 어느 누구도 나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도 1인당 1개의 영혼, 1개의 생을 부여받았다. 알고 보면 인생은 이토록 참으로 간단하고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