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날은 큰 지네가 나왔다.
대리님은 회사 주변에 산이 있어서 종종 나오는 거라고, 비 오는 날 제일 많이 나오는데, 가끔 여름이든 겨울이든 한 마리씩 배수관을 타고 올라오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웃으며 회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때
심각하게 퇴사를 고려했다.
시장에서 약용으로 파는 죽은 지네도 절대 안 보려고 용쓰며 에둘러 지나가는 나에게 지네라니
그것도 살아있는!
이런 환경에서는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왜 이 회사에 왔을까.
이게 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안한 (또는 못한)
내 잘못이야!라는 온갖 나쁜 생각도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음날부터 안 나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무작정 갑자기 퇴사를 하고 돈을 안 벌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음날도 회사에 갔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나 자신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벌레 하나 때문에 정말 그만둘거야?
우리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멋질 때도 있지만
그래서 더 힘이 들 때도 있다.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통통하고 긴 지네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징그러움을 넘어서 공포스럽기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그 일터의 모든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벌레가 종종 출몰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이 회사의 좋은 점, 멋진 사람들도 많았다.
삶도 그랬다.
하루 종일 운수 나쁜 하루도 있지만
인생 전체를 보면 그날은 수많은 좋고 나쁜 날들 중 하나일 뿐 결코 내 인생을 어둡게 다 물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어둠을 밝히는 손전등 또는
태양빛을 모으는 돋보기와도 같아서
한 부분에 집중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때로 어두운 면을 보면
온 세상이 어두운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밝은 면을 보면
온 세상이 밝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흑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색도 있고 다른 색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