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나라마다 죽음을 표현하는 다른 용어가 있지만 나는 특히 한국에서 윗사람이 별세하셨을 때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하는것을 선호한다. 좋아한다기 보다, 그게 맞는 표현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단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우리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삶을 잘 살게 만드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이다. 삶을 잘 살고 싶은 마음에는 끝이 없지만, 죽음의 순간 나는 어떤 상태이고 싶은지, 어떤 것을 후회하지 않길 바라고 어떤 것에 가장 뿌듯함을 느낄지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행 불행을
한 발자국 멀리서 바라보아야 한다. 행 불행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며 우리가 그것을 어디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단편적인 시각만 가지고 행들의 연속만을 바라다가는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행 불행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평온함이다.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니라
분별없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자체를 수용하는 것. 반찬투정을 하지 않듯이 단 맛이든 쓴 맛이든
그것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느끼고
보내주는 것.
나는 때때로 인생이 프로그램처럼 짜여있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캐릭터가 있고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으며 여러 가지 엔딩이 있다.
하지만 게임은 얼마나 잘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즐기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게임의 본 목적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명상마저 이런 노력으로 한다면 그것은 똑같은 욕심일 뿐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줄 수 없을 것이다.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명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좋은 것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마음공부의 본질이 아니다.
명상은 잘 살기 위한 자기 계발의 도구보다는 인생이 짧다는 것을 되새기는 도구에 더 가깝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본질을 되새기면 저절로 잘 살게 된다.
게임에 인생을 거는 자와 게임을 재미로 하는 자는 다르니까
게임이 게임인 줄 알고 하는 자와 게임이 게임인 줄 모르고 하는 자의 태도는 다르니까.
휴대폰도 주기적으로 재부팅 해주어야 좋듯이 우리도 가끔 로그아웃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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